협회소식
철도뉴스
동남아 철도는 달린다… '중국 빚 시한폭탄'을 싣고
작성자 관리자작성일 2025-11-21조회수 566
??동남아 철도 명암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할림역 역사 내에 동남아시아 첫 고속철도인 '후시' 열차 모형이 전시돼 있다. 자카르타=허경주 특파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외곽에 위치한 고속철도 할림역. 시내에서 차로 30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이 역은 자카르타와 서자바주 주도(州都)이자 제3의 도시 반둥을 잇는 고속철 ‘후시(Whoosh)’의 출발지다.
지난 5월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대거 들어선 신식 건물에서 공항 수준의 깐깐한 보안검사대를 통과하자 넓은 대합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말을 맞아 반둥으로 향하는 시민과 관광객 50여 명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둥 화산섬에 간다는 20대 여성은 “차로 3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가 후시로는 40분”이라며 “티켓 값(25만 루피아·약 2만2,000원·일반석 편도 기준)이 버스 요금(7만7,700루피아)보다 비싸 부담스럽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할림역에서 시민들이 열차 탑승을 위해 역사 내로 들어가고 있다. 자카르타=허경주 특파원
2023년 10월 공식 운행을 시작한 ‘후시’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다. 인도네시아 주요 대도시 사이 142㎞ 구간을 최고 시속 350㎞로 달린다. 개통식 당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대중교통 현대화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자부심이던 후시는 정부 재정 부담의 주범이 됐다. 예상보다 저조한 수익성과 중국 자본 의존이라는 구조적 한계 탓이다.
후시 운영사 인도네시아중국고속철도(KCIC)는 현지 국영기업연합과 중국계 기업이 6대 4로 지분을 나눠 갖는다. 사업 초기 일본도 참여 의사를 내비쳤지만 ‘사업비 전액 융자’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한 중국이 결국 사업권을 따냈다. 총사업비 72억 달러(약 10조3,000억 원) 중 75%에 해당하는 54억 달러(약 7조7,000억 원)가 중국개발은행 대출이다. 연간 이자만 약 1억2,000만 달러(약 1,700억 원)에 이른다.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재임 중인 2023년 10월 2일 자카르타 할림역에서 후시 개통을 축하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영철도회사 KAI 제공
인도네시아는 하루 5만~7만6,000명이 탑승할 경우 운송 수익만으로 중국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을 세웠다. 그러나 실제 승객 수는 평일 1만6,000~1만8,000명, 주말 1만8,000~2만1,000명 수준이다. 예상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차 역이 도심과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전체 운행 구간도 짧아 실효성이 낮은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운임과 평균 일일 승객 수를 바탕으로 산출한 후시의 연간 매출은 약 1억1,000만 달러(약 1,570억 원) 수준이다.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KCIC 지분 60%를 가진 국영기업연합의 부채는 올해 6월 기준 18조9,348억 루피아(약 1조6,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할림역 대합실에서 승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자카르타=허경주 특파원
심각한 적자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결국 지난달 중국과 채무 구조조정 협상에 돌입했다. 로산 루슬라니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은 “채무 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포괄적 개혁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에서는 국비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부는 이용객 확대를 위해 노선을 제2도시 수라바야까지 500㎞ 이상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후시는 인도네시아의 ‘부채 시한폭탄’이 됐다.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할림역 대합실 전광판에 반동행 열차 시간이 표시돼 있다. 자카르타=허경주 특파원
인도네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동남아 ‘중국 철도 개발 모델’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남서부 윈난성 쿤밍부터 라오스·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로 이어지는 광역 철도 회랑을 추진 중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일환이다.
육·해로를 장악해 중국 내륙에서 세계 주요 해상 교역로인 믈라카해협 관문을 직접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동남아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석유·가스 등 전략 물자 운송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의도도 깔렸다.

2023년 10월 라오스 비엔티안에 위치한 라오스-중국 철도 비엔티안 역사. 중국풍으로 건축됐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인프라 개발이 절실하지만 자본력은 부족한 동남아 국가에도 중국 대규모 차관은 매력적이다. 서구와 달리 환경·인권·보증 조건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 같은 방침에 ‘저개발국에 부채의 덫을 놓는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특히 후시 사례는 그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첫 신호탄이라는 평가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재정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국가로는 라오스가 거론된다. 라오스는 2021년 12월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 쿤밍을 잇는 ‘라오스-중국 국제여객열차(LCR)’를 개통했다. 총 1,035㎞로, 부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거리와 비슷하다. 최고 시속 160㎞로 국제 고속철 기준(시속 200㎞)에 못 미치지만, 기존 열차보다 빠르다는 의미로 현지에서는 ‘고속철’이라고 불린다.

지난 2023년 10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국 쿤밍으로 향하는 '라오스-중국 국제여객열차'.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사업비 59억 달러(약 7조 원)를 중국과 라오스가 7대 3으로 나눠 부담하는 구조다. 같은 비율로 설립된 합작회사가 중국 금융기관에서 35억4,000만 달러(약 5조1,900억 원)를 대출받았다. 중국과 라오스 정부도 각각 16억3,000만 달러(약 2조4,000억 원), 7억3,000만 달러(1조700억 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개통 이후 라오스의 관광·물류 이동이 전보다 원활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LCR가 라오스를 파산으로 몰고가는 급행열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59억 달러는 라오스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라오스의 총부채가 올해 GDP의 118%, 2029년 12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전체 부채 규모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데다, 공공부채 절반 이상은 중국에 지고 있다.

지난 2023년 10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중국 쿤밍행 라오스-중국 열차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비엔티안=허경주 특파원
라오스 정부는 열차의 흑자 전환을 바라지만 낍화(라오스 화폐) 가치 하락과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대출 상환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라오스 위기는 중국이 개발도상국 최대 채권국으로 부상한 시대의 중요한 연구 사례”라고 꼬집었다. 중국 자본이 인프라 발전 동력이 아닌, 새로운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의 동남아 철도 건설 사업. 송정근 기자
중국발 부채 경고음은 앞으로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여러 국가가 중국 자본과 연계한 신규 고속철 건설과 기존 철도 개량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접한 북부 국경도시 라오까이부터 수도 하노이를 거쳐 북부 최대 항만인 하이퐁까지 391㎞ 구간을 잇는 철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총 203조 동(약 11조5,000억 원)이 드는데, 일부 자금을 중국 차관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동해안철도(ECRL) 역시 중국이 주도하는 665㎞ 프로젝트로, 2027년 개통 예정이다.

지난 6월 베트남 하노이역에 열차가 정차해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태국은 2019년 중국·라오스와 철도망 연결 사업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방콕~나콘라차시마 1단계 250㎞ 구간 공사가 진행 중이다. 2단계(나콘라차시마~라오스 농카이·357㎞)까지 완공되면 방콕에서 라오스를 거쳐 중국 쿤밍까지 육로로 이어진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를 두고 “동남아 ‘황금철도’ 회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중국 자금 신뢰성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로위연구소는 “2015~2021년 중국이 해외에 약속한 원조·대출의 60% 이상인 547억 달러(약 78조1,000억 원)가 실제 이행되지 않았다”며 중국 자본 의존적 개발 모델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했다.

이들 국가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는 ‘동남아시아의 잠비아’가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내륙 국가인 잠비아는 댐,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66억 달러를 빌렸다가 2020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전체 부채 중 중국 부채 비율이 52%에 이르는 스리랑카도 지난 2022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중국에서 자금을 끌어다 대규모 항구를 건설했는데,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정부 지분 80%와 99년간의 운영권을 중국에 넘겨야 했다. 라일리 듀크 로위 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에 갚아야 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일대일로 참여국 중 23개국이 파산 위기에 처한 상태”라며 “다른 개도국도 보건이나 교육, 빈곤 감소 등에 써야 할 지출이 줄어 더욱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